2009/03/23 유투 NLOTH 사진 시리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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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5.03.14. 443호 1987.0507. 499호 ![]() 1987.1008. 510호 1989.03.10 521호 ![]() 1989.03.09. 547호 1991.11.14 618호 ![]() 1992.10.01. 640호 1993.03.04 651호 ![]() 1993.10.13. 667호 1997.03.29 761호 ![]() 2001.01.18. 860호 2004.12.30. 964,5호 ![]() 2005.11.03 986호 2009.03.19 1074호 2008년 9월 19일. (어머. 그러고보니 날짜는 살짝 넘어가버렸네) 그냥. 너무 동방신기 얘기로 들떠있던 상황에 그런 소식을 접하니.
유투는 내게 신념 같은 밴드다.
라고 첫 문장을 시작하니. 글쓰기가 너무 어렵다. 포기. 다시 시작. 뉴질랜드로 가는 비행기에서 여행 가이드북을 뒤적이다 알았다. 원트리힐이 뉴질랜드에 있구나. ![]() 원트리힐. 오클랜드에 있는 여러 사화산 중의 하나. 마오리 족의 많은 전투를 이겨낸 나무 한 그루가 서있었다는 언덕. 지금은 오클랜드를 조망할 수 있는 훌륭한 관광지로 가이드북에 나와있는 곳. 물론. 이런 이유로 내가 원트리힐을 아는 건 아니다. 유투의 노래 중에 'One Tree Hill'이라는 곡이 있다. (아주 좋은 노래다. 만약 안 들어봤다면 일청을 강권한다. 유튜브의 링크는 여기. 퍼오는 건 허락 안 한단다.) 유투의 노래에는 죽음이 얽혀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노래도 그렇다. 유투는 1985년 뉴질랜드 공연 떄 그렉 캐롤이라는 마오리 청년을 만났고 그의 일솜씨가 마음에 들었는지 투어 크루로 픽업한 후 아일랜드로까지 데려갔다. 그리고 어느날 그렉 캐럴은 보노의 할리 데이비슨을 집에 가져다주기 위해 길을 나섰다. 비가 심하게 내리던 날이었다. 도로는 젖어있었고, 도저히 앞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앞서 가던 차가 갑자기 멈추어섰고, 캐럴은 미처 멈추어서지 못했다. 그리고 그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생각해보자. 1985년의 공연이 끝나고 아일랜드로 돌아갔다면. 이제 유투는 <조슈아 트리>를 만들게 된다. 1986년의 유투. 엄청 떴지만 최고는 아니었다. 한 걸음만 더 가면 하늘 끝에 닿을 것 같은 심정이었을 거다. 그들은 최고를 향해. 음악을 향해. 하늘을 향햐 미친 듯 질주하고 있었을 거다. 아니. 어쩌면 이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날 밤 보노는 친구들하고 마약 파티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고 다리 길고 얼굴 작은 수퍼 모델과 심각한 작업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 그들이 성공을 잡으려다 친구를 잃은 거라고 생각하기로 하자. (그러게. 처음에 말했지 않나. 유투는 내게 신념 같은 밴드라고.) 보노와 알리(모노의 와이프), 래리와 앤(래리의 연인)은 그렉의 시신과 함께 뉴질랜드로 갔다. 그렉은 마오리족 추장과 원로들이 모인 가운데 마오리 부족 묘지에 묻혔다. 장례식은 마오리 의식에 따라 사흘 밤낮 동안 계속되었다. 지금의 유투를 있게 한 앨범 <조슈아 트리>에 실린 노래 'One Tree Hill'은 사흘 밤낮을 계속되었다는 그 장례식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추위를 견디며. 추위와 마주하는 밤. 대낮의 태양은 높아도 그림자를 남기지 않고 상처는 대지 속 무덤으로 새겨지네. 원 트리 힐 너머로 달이 떠오르고 너의 무덤 속으로 해가 진다. 이제 너는 강을 따라 흘러가는구나. 강을 따라 저 대양으로. 그리고 친구가 떠나간 세상을 그리며 노래를 마무리 짓는다. 오. 대양이야. 오. 바다여. 나는 대양으로. 바다로 달려가네. 'One Tree Hill'을 들으며 나는 스산한 속삭임 같은 바람이 불고. 붉은 달이 떠오르고. 발밑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그런 곳을 생각했다. 죽음이 삶보다 가까운 곳. 어제가 내일보다 새로운 곳. 뉴질랜드의 원트리힐은. 유투의 'One Tree Hill'과는 다른 장소였다. 새끼 거북처럼 줄지어 달리는 오클랜드의 주택가 사이로 높이 솟은 언덕. 그리고 뾰족한 기념비 하나. 그곳이 뉴질랜드의 원트리힐이었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상상하던 것의 실체를 보는 것은 내겐 언제나 괴로운 일이었다. 그것이 만족을 주는 일은 좀처럼. 아니 결코 없기 때문이다. 내 상상과 미세하게 어긋난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다른 원트리힐은 그래서 오히려 안도를 주었다.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질 때 원트리힐 위로 떠오른 달이 붉게 물들 때 우리는 다시 만나리. 오. 거대한 대양이야. 오. 위대한. 바다여.
일본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기내지에서 베른에 관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아인슈타인은 "E=mc2" 공식을 완성한 1905년(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무렵 베른에 살았더랬는데. 베른 시에서 아인슈타인의 흔적이 남은 88가지 장소를 투어 코스로 만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문득, "아니, 도대체, 누가 실체조차 없는 공식을 완성한 '장소' 따위에 가고 싶을 거란 말야? 거기서 무슨 감동을 느낄 거라고."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라면 "어머, 여기가 아인슈타인이 산책한 장소야, 아, 아인슈타인이 이옷을 입고 이 책상에 앉아 그 유명한 공식을 연구했단 말이지." 하면서 감동.감격.숙연. 이러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제가 'E=mc2'이 인류의 역사에, 제 인생에, 우주의 본질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유투 공연에 다녀와서 난데없는 아인슈타인 타령을 하는 것은 유투를 실물로 접하고 난 후 제가 느끼는 이 '허무한 마음' 때문입니다. 저는 항상 "나는 특별한 유투팬이야"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정색하고 한단어 한단어 머리 속으로 되뇌인 건 아니지만 늘 그런 기분이었죠. 저보다 유투를 더 좋아하는 사람도 많고 더 많이 아는 사람도 많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나는 특별한 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글 보시는 분들 중 그런 생각 안 해보신 분, 손 들어보세요.) 그런데. 공연이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그날의 공연에 대해 기억나는 순간도, 특기할 만한 느낌도, 대단한 감동도 없습니다. 세트리스트대로 다시 들어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마 공연 중에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처럼 눈물이 줄줄 흐르지도 않았고 감동해서 붕 뜬 것 같은 순간도 없었고 손가락 끝이 저릿하지도. 눈앞이 어질하지도. 마음이 철렁하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공연중 했던 '생각'은 몇가지 기억이 납니다. "왜 이렇게 어느 노랜지 모르겠지?" 정말 그랬습니다. 다 아는 노랜데. 가사도 다 따라하겠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노랜지 모르겠는겁니다. 심지어는 제가 제일 좋아한다는 'Bad'- 까페 가입할 때, 가장 좋아하는 노래 쓰는 란. 제가 거기 써넣은 노래가 'Bad'입니다-를 부르는데도 한참이 지나서야 그게 'Bad'인 줄 알았습니다. "두번째 생각은 보노 이빨 빠지려면 한참 멀었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유투팬을 놀리느라고-그는 이번 공연에 못 갔습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유투는, 보노 이빨 다 빠지거나, 아니면 남북 통일 해야 와요. 근데. 이빨 빠지만 Streets 부르면서 달리지도 못할 텐데. 그때 봐서 뭐해요? 지금 가야되요. 다음 앨범 내면 보노 이빨 다 빠질 지도 몰라요." 그런데. 보노. 아직 젊더군요. 10년 내에는 이빨 안 빠질 것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동경으로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도 그랬습니다. 감정상태가 불안정해서 약간 울고 싶은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흥분' '감동' '고양' 이런 것과는 상관없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건 '허무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83~84년 부터 유투를 들었습니다. 라디오로, 카세트 테이프로, LP로, CD로, mp3로, 불법 카피 VHS 로, DVD로 유투를 들어왔죠. 그렇게 20년 동안을 키워온 환상의 실체를 보았으니 허무하지 않다면 그게 이상한 일일 겁니다. 다행히 그 환상을 깨뜨릴만큼 가까이 가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그 환상은 내가 그려왔던 것만큼 훌륭했(던 것 같)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오래동안 버려두고 있는 사이트 유투스프레이에 접속해 글들을 읽어보았습니다. 3~4년 전에 제가 썼던 글들. 낯뜨거운 것도 있고 여전히 공명하는 글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제가 정말 '나는 특별한 유투팬'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구나"하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때에는 강세가 '나'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라서 특별한 유투팬이 된 것이 아니라 내가 유투 음악과 소통하고 공감하면서 그것을 나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나 자신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인데 말입니다.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는 그렇게 하나하나 모두가 특별한 유투팬이 수만 명이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저를 포함해서) 유투(그들이 표방하는 이면을 포함한)를 지탱해주는 힘이죠. 공연이 끝나고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남편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초반부 사람들에게 밀리고. 밟히고. 치일 때는 내가 일본까지 와서 이게 뭐하는 짓인가, 화가 났는데, 돌아보니 네가 너무 즐거워하면서 펄쩍펄쩍 뛰고 있는거야. 그래서 마음이 풀어졌지. 다음에 또 기회 있으면 가자구. 근데. 하나는 약속해야 돼. 절대 앞쪽에 가겠다고 고집 부리면 안 돼."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즐겁게 공연을 보긴 했구나. 그런데도 이렇게 아무 생각도 안 나는 걸 보면 혹시 이게 제가 'E=mc2과 베른에서는 느끼지 못할 것이 분명한 진품의 아우라. 현장의 압도감 같은 것 때문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20년을 기다린 공연을 보고났는데. 아무런 기억이 안 난다'는 사실에 아이러니컬하게도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지난주 금요일 퇴근길. 막히는 올림픽대로에서. 아케이드 파이어의 'Wake Up'을 들었습니다. ('Wake Up'은 공연 시작을 알리는 자명종 같은 노래였습니다.) 갑자기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 무대 앞 풍경이 확 살아 일어났습니다. 'Wake Up'이 시작되자 갑자기 확 밀리던 관중들. 내앞에 있던 남자의 머리냄새. 뒷쪽 외국 남자가 '보노'하고 부르던 외침. 아드레날린이 온 몸을 미친 듯이 내닫던 느낌. 그리고는 유투 공연이 모두 기억났느냐구요? 물론. 아닙니다. 그냥 그게 끝이었습니다. 어떤 계기를 통해서 모든 기억이 소환되는 것. 그건 영화나 드라마에나 있는 일인 모양입니다. @@ 다시 블로그를 시작하며. 늘 숙제 같았던 후기를 정리했습니다. 사실 1년 반 전에 쓴 글에서 고친 건 거의 없습니다. 접속사 몇 개. 조사 몇 개 정도. 그때 그냥 올렸어도 됐는데. 이제와 소용 없는 후회를 했습니다.
일단 많다. 그거 하난 확실하다.
1. 유투스프레이 정리하기 : 이건 생각보다 큰 일이다. 계속 관리하자니 버겁고 내다 버리자니 아깝다. 게다가 저 녀석을 어떻게 할지 정해야 인터넷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내 명의' 사이트/블로그들을 어떻게 할지 정리할 수 있다. 네이버 블로그는 일단 모두 비공개로 돌려놓았고. 이글루스에 있는 다른 블로그 -이건 유투스프레이 옮겨가려 만들었던 거긴 하지만- 하여튼 그녀석도 정리해야 한다. 게다가 유투스프레이 뒤에 숨겨놓은 개인 사이트도 있는데 여기에 있는 글도 만만치 않다. 버리긴 아깝고 옮겨가자니 머쓱하다. 그러고보니 엔비에도 블로그가 있다. 한 서너달 쓰다 버려둔. 그런데다 티스토리에다가도 블로그를 두개나 만들어버렸다. 하나는 오에스티오브마이라이프이고 다른 하나는 역시 유투스프레이 이사갈 집인데 아직은 대문만 있다. 프리챌에는 개인 까페가 있고 싸이월드에도 있다. 이걸 올해 안에 다 정리? 그건 바라지도 않고.일단 가닥만 잡아보자. 아니면. 확 다 버리지 뭐. 2. 유투 공연 후기 쓰기 그게 도대체 언제냔 말이다. 12월 초에 다녀왔으면서 아직도 후기를 못 썼다니. 아니. 사실은 거의 다 썼다. 조기 아래에 비밀글로 숨겨져 있다. 그런데. 화룡점정이 안 된다.,,는 건 거짓말이고, 글에 내 마음이 그대로 담겨주질 않는다. 그래서 계속 조금씩 수정하고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이 뭔지 나도 모르겠다. 그래도 올해를 넘기는 건 너무하다 싶어, 기필코 2006 날짜 박아 내놓으려 한다. 3. 집 나간 열정이 잡기 조 아래 포스트에 썼듯이. 열정이가 집을 나갔다. 걔를 잡아오거나. 걔 찾아서 나도 집 나가거나. 양단간에 결정을 해야한다. 이렇게 내 일에 대해 서성거리는 거, 내 성격에도 안 맞고 회사에도 누끼치는 일이고, 내 앞에 앉은 후배 10명에게도 부끄러운 일이다. 제임스 브라운이 죽었다. 거창한 헌사를 하고 싶지만 솔직히 별 느낌이 없다. 하지만 이런 거물들이 죽을 때마다 나중에 마돈나가 죽으면, 마이클 잭슨이 죽으면, 보노가 죽으면, 어떤 기분일까 생각하게 된다. ... 유투는 죽음에 대한 노래를 꽤 만들었다. 데뷔 싱글인 'I Will Follow'는 보노의 엄마에 대한 노래다. 보노는 어린 시절 엄마를 잃었는데. 그의 노래 곳곳에 그로 인한 상실감이 숨어있다. 'Pride'는 마틴 루터 킹의 죽음에 대한 노래고. <The Joshua Tree>의 'One Tree Hill'은 보노의 조수였던 한 마오리족 청년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난 앨범에 실렸던 'Stuck in A Moment'는 보노의 친구였던 마이클 허친스의 자살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원자폭탄 앨범에 담긴 'Sometimes You Can't Make it On Your Own'에는 보노 아버지의 죽음이 얽혀있다. 보노의 아버지는 지난 '엘리베이션 투어' 중 세상을 떠났다. 보노는 어린 시절 아버지 속을 많이 썩였고 이로 인해 둘은 사이가 별로 안 좋았다고 한다. (왜 안 그랬겠는가? 보노가 엄청 말 안 듣는 아들이었음은 안봐도 비디오다) 지난번 일본공연에서 보노가 이 노래를 부르던 모습은 내 마음에도 깊이 남아있다. 뭉클,했던 순간이었다. 뮤직비디오에 실린 보노를 보면서 정말 이렇게 얘기해주고 싶다. "Sometimes YOU Can't Make It On Your Own."
이제 열흘 남았다.
그런데. 비행기표도. 호텔 바우처도. 공연 티켓도 없다. 다 인터넷으로 예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약간 실감이 없다. 현물이란 게 그렇게 중요한 거다. 어느 블럭인지 메일을 보냈더니. A 1029, 1030이란다. A니 분명 B보다는 좋을 거고. 스탠딩인데 1029, 1030은 뭐지? 내 앞에 1000명이 있단 얘긴가? 하여튼. 이제 열흘 남았다. 하지만 그 열흘 동안 해야할 일이 엄청나게 많다.
호주 공연이 시작되면서 세트리스트가 나왔는데,
흠. 안 듣고 싶은 노래도 좀 있다. 계속 저대로 가려나? 아님 좀씩 바꾸려나. 그런데 가만 살펴보니, 헛. 배드가 없는 거다. 유투 나빠. 배드는 나의 페이보릿 유투 송. 베스트 버전은 라이브 에이드. 언더 더 블러디 레드 스카이 수록 버전. 유투 - Bad (라이브 에이드 공연 실황) 브리즈베인 세트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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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음 나는 지금
아이덴티티 크라이시스를 겪는 중입니다. 난 누군지. 여긴 어딘지... . 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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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다히카루 노래 좋..
by 우타다히카루노래 at 09/14 애초에 부끄럽지 않을만.. by 살라딘 at 08/22 저거 보통 헬맷이 아님... by 우유과자 at 04/17 당연히 그렇겠죠. 배송료.. by 얼음 at 04/03 물론 배송료는 별도겠죠? .. by like at 03/30 l***님. 이번엔 티켓팅이.. by 얼음 at 03/20 섹시 부츠,는 참 이상한.. by 얼음 at 03/20 보노도 이번 앨범 은근 .. by like at 03/19 2000년 들어서 나온 앨범.. by 얼음 at 03/19 1. 공식팬클럽에 가입하.. by 얼음 at 03/19 이글루 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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