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릭 스웨이지 - She's Like the Wind (더티 댄싱 OST)


토요일 저녁. TV를 켜니 <더티 댄싱>을 하고 있었다. 와. 그 옛날의 영화. 자리에 주저 앉아 보기 시작했다. 윗옷을 벗은 패트릭 스웨이지. 허리까지 올라오는 바지. 앞머리를 둥글게 세운 헤어스타일. 귀에 익은 노래들. 생각해보니 OST(얼마 전 재발매되었을 때 CD로 새로 샀는데, 솔직히 아직까지 한번도 안 들었다), 닳게 들었던 게 기억이 났다. 그중에서도 패트릭 스웨이지가 불렀던 노래 'She's Like the Wind'. 여름 휴양지의 가난한 댄스 강사와 휴가 온 부잣집 아가씨의 금지된, 아니 허락받지 못할 사랑이야기. 이 노래는 두 사람이 헤어질 때 나왔던 가슴 아픈 노래이다. 나는 그 장면을 기다렸다.

드디어 전주가 흐르고 노래가 시작되었다. She's Like the Wind Through My Tree. She Rides the Night Next to Me, She Leads me to Moonlight only to Burn me with the Sun. She's Taken My Heart. She Doesn't Know What She's Done. Feel Her Breath on My Face, Her Body Close to Me. Can't Look In her Eyes. She's Out of My League. Just a Fool to Believe I have anything She Needs. She's Like the Wind. 이렇게 길게 가사를 써내려가는 것은. 내가 아직까지도 이 노래의 가사를 다 외우고 있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서다! 하핫. 이 노래를 얼마나 좋아했던지. 언젠가 이런 사랑을, 가슴 아파서 더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싶었던 걸까? 나는 반쯤은 시니컬하고, 반쯤은 설레는 마음으로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드디어 그 장면이 시작되고... 아앗. 그런데 왜인지 그리 가슴 아프지 않았다. 기대에 못 미쳤다. 예전엔 정말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는데... 그러고 생각하니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열아홉이었다. 아니 열여덟이었던가. 고등학생 관람불가인 영화였지만 교복을 입고 들어가 봤던 게 기억 났다. 맞아. 열여덟.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어떤 건지 몰랐고, 헤어지는 게 어떤 건지도 몰랐다. 그때. 사랑은 영화와 드라마와 음악에 의해 과대포장된 환상이었다. 이별은 사랑보다도 더욱 더 과대포장되어 있었다.

그후로 십여 년이 흘렀고. 나는 사랑이 그렇게 달콤하고 순수한 절실한 감정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지상최대의 과제, 지고지순한 선, 목숨을 바쳐 지킬 가치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니, 사랑이 대수로운 것이 아니라는 게 아니라. 영화에서처럼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사랑의 열정과 허기는 도입부일 뿐이다. 시간은 많은 것을 갉아먹는다. 생활은 많은 것을 무너뜨린다. 열정만으로는 그 상실감과 허무함을 이겨낼 수 없다. 사랑은 닳고 식고 부서져서 결국 일상이 되고, 그렇게 되어야 영원할 수 있다. 사랑은 영원할지 모르지만 열정은 영원하지 못한다. 사랑은 습관이고, 사랑은 적응이고, 사랑은 참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별은. 글쎄. 대단히 가슴 아픈 이별에 대한 기억이 없어서 - 다행인지 불행인지 - 뭐라고 말할 자격은 없지만. 나는 십여 년 동안, 세상에 견디지 못할 절망과 견디지 못할 슬픔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마도 이별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나는 주저앉은 자리에서 영화를 끝까지 다 보았다. 마지막 장면. 두 사람은 'a Time of My Life'에 맞추어 춤을 춘다. I had a Time of My Life. And I Owe It All To You. (이 노래 가사는 이 후렴구절밖에 기억하지 못한다) 두 사람은 여름 휴양지에서 생애 최고의 순간을 보냈고, 아마도 그 사랑으로 인해 인생에서 많은 것이 변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을까. 영화 속의 일이니 모르긴 하지만, 결국 그들은 헤어지고, 또다른 '생애 최고의 순간'을 선사하는 상대를 만났을 것이다. 행복한 사람들은 늘 이번 사랑이 가장 아름답고, 이번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 행복한 사람들에겐 지난 사랑의 소중했던 순간도, 잊지 못할 것 같던 시선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잊혀진다. 그리고 내 인생을 바꾸어준 것 같던 상대도 결국은 잊게 된다. 불행한 사람들만이 늘 마음 속에 지금 사랑보다 더 소중했던 순간을 기억하며 살아간다. 그녀는 결국 나를 훑고 가버린 바람일 뿐이다. 그리고 나는 바람을 따라 날아가지 못하는 습관과 일상과 기억일 뿐이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

by 얼음 | 2008/09/03 16:43 | 내인생의 사운드트랙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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